와인과 친해지기

피노 누아랑 친해지기

와인비전 2009. 1. 14. 17:31
  친한 친구들과 조촐히 함께 했던 송년회. 술을 잘 못 마시는 친구도 있고 와인과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도 있어서 가볍게 가기로 맘을 먹고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한 병과 미국 소노마의 피노 누아 한 병을 들고 갔더랬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와인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기 저기서 제법 마시고 다녔던 친구 녀석들. 피노 누아라는 이름을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오, 처음 들어봐."
  "버건디는 들어봤지? 그게 피노 누아로 만든 거야. 이건 미국에서 만든 거니까 품종 이름으로 부르지."
  "앞으로 사랑해 줘야겠는걸? 좋다."
  
  우리나라는 마시는 와인이 조금 편중되어 있는 것 같다. 바나 레스토랑에 가면 화이트 와인의 수는 굉장히 적다. 와인 리스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레드 와인이요, 그 중에서도 보르도, 신대륙의 보르도 스타일, 카베르네 소비뇽의 수는 절대적이다. 얼마 전 한국인이 사랑하는 와인에 대한 기사를 보았는데 '이것만 알아도 와인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데 편하다'라는 타이틀로 뽑힌 와인 스물다섯 가지가 나와 있었다. 그 중 보르도/보르도 스타일/카베르네 소비뇽은 몇 개였을까? 14개나 된다. 25개 중 스파클링을 포함한 화이트의 수가 셋밖에 안 되고... 물론 요즘은 칠레 와인이 굉장히 많이 팔리고 있고(그렇다. 카베르네도 많다 -_-)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와인 등도 점점 인기를 얻어가고 있지만 피노 누아는 아직 낯선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피노 누아가 접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이 포도는 다른 것들에 비해 비교적 섬세하고 연약하며 기후와 병충해에 민감하기 때문에 재배하는 데 엄청난 노력과 주의가 필요하고 생산량 자체가 적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격이 비싸고... 피노 누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버건디 - 옆에 나온 쥬브리 샹베르탱처럼 코딱지만한 땅덩어리, 오랜 역사, 유명세, 비싼 가격 등을 생각해보라 - 인 것도 한 몫 거든다. 하지만 이제는 뉴질랜드, 호주, 미국 등지에서 나오는 피노 누아가 신대륙 특유의 가볍고 쉬우며 신선한 특징을 무기로 급부상하고 있다.

  피노 누아는 대표적으로 딸기, 붉은 체리, 붉은 자두 같은 붉은 베리와 장미, 바이올렛 같은 꽃향을 풍기고 숙성에 따라 사람들이 흔히 "똥내"라고 표현하는 쿰쿰하면서도 복합적인 향을 갖게 되기도 한다. 처음 와인을 배울 때 시작이 화이트 와인, 신선한 피노 누아 같은 것이라고 하면 그 끝은 오래 성숙해 똥내 나는 버건디라고 하니 숙성 정도에 따라 참으로 극적인 특성을 보이는 품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 번에 레드 와인을 마실 일이 생기면 피노 누아를 한 번 마셔보자. 빈티지가 어린 신대륙 것이라면 가격도 그리 세지 않다. 일반 레드 와인보다 약간 차게 한 다음, 맛과 향이 그리 진하지 않은 가벼운 음식과 함께 곁들여보자. 또 아나? 레드 와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즉시 사랑에 빠지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