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점심시간 서울 도심의 한 호텔. 골프 와인으로 유명한 `1865'를 만드는 칠레 산페드로 와이너리의 자비에 비타 사장은 지구 반 바퀴를 건너와 마이크를 잡았다. 첫 화이트와인 `1865 쇼비뇽 블랑'의 한국시장 홍보를 위해서다. 그의 방한은 국내 와인시장이 침체됐다고 하지만 한국시장이 차지하는 1865 판매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국내 와인 수입업체 대부분은 여전히 악전고투하고 있다. 불황과 환율상승으로 와인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와인 수입업체 중 빅10에 드는 A사는 최근 부도 직전까지 몰렸지만 간신히 고비를 넘겼을 정도다. 불과 2년 전 와인 만화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와인 불패'가 유행했던 풍조와 대조를 이룬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1월1일 기준 국내 와인수입업체는 200여 곳에 달하지만 이중 절반정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알려졌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한-EU FTA 잠정 합의는 국내 와인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를 터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내년 1월 FTA가 시행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와인에 관세가 철폐되며 10∼15% 이상 가격인하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지난 2004년 4월 한-칠레간 FTA 발효 후 칠레산 와인이 관세 철폐로 빠르게 국내시장을 장악한 것을 떠올린다. 와인 수입업계가 한-EU FTA를 반기는 것도 앞으로 더욱 다양한 유럽와인이 수입되며 국내 와인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수입가격만 낮아진다고 수입업체 경쟁력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유럽 와인은 포도 품종별로 4∼5가지 와인을 뒤섞은 블랜디드 와인이 많기 때문에 상품 분석능력을 더욱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 와이너리에 끌려다니지 않는 협상력과 할인점과 술집을 아우르는 국내 유통망 개척도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와인 수입 활성화를 계기로 가격대별 와인 군을 더욱 다양화해 불황에 흔들리지 않는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돈이 된다고 해서 너나없이 와인수입에 뛰어들었던 과거를 돌아보고 실력을 갖춰 유럽와인 수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EU FTA 합의가 위기의 나날을 걷고 있는 와인 수입업체에게 판로를 열어주고 와인 애호가들은 더 싼 값에 좋은 와인을 맛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출처: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9032616305473258&outlink=1

2009. 3. 29. 14:14 Trackback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