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역사

와인은 포도의 즙이 세상 거의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효모(이스트)를 만나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는 발효과정을 거쳐 얻어지므로 자연현상이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와인의 “기원”은 인류가 자연에 존재하는 와인을 “발견”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기 전인 채집 수렵기에도 와인은 존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의 사람들이 채집하여 먹고 남은 야생포도를 저장해 두면 포도송이들의 자체 무게에 눌려 생긴 포도즙에 자연 효모가 들어가 발효를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와인이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하고 또한 현재와 같이 번성하게 된 것은 포도가 갖는 몇 가지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포도는 여러 과일 중 당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하여 발효 후의 알코올 도수도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과실주이다. 일반적으로 알코올 성분이 10% 전후가 되어야 보존이 가능한 술이 되는데 포도 이외에는 알코올이나 설탕의 첨가 없이 이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과일은 드문 편이다. 그리고 포도의 껍질이 연약하여 쉽게 즙을 얻을 수 있는 점과 껍질에 함유된 타닌 등의 여러 성분 등이 와인 풍미에 중요한 역할(특히 레드와인에서)을 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와인제조의 제일 중요한 포도 품종인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종은 코카서스 지방에 기원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카서스는 카스피해와 흑해의 사이에 있고 현재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등의 국가가 있는 지역이다.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기원전 4,000년경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비니페라종 포도가 재배되었다고 한다. 물론 포도의 재배가 반드시 와인의 제조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리스의 크레테 섬에서 발견된 미노스 시대(기원전 3,000년)의 와인즙을 짜기 위한 프레스 잔해와 남은 포도 껍질, 씨, 줄기는 와인제조의 직접적인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이란에서 발견된 기원전 3,500년 페르시아 시대의 암포라(amphora: 손잡이가 두 개 달린 항아리) 내부의 붉은색 얼룩에서 와인의 주요성분인 타닌과 타타르산이 검출되었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코카서스 지방에서 와인이 기원하여(발견되어) 인류 문명의 발전에 따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등지로 확산되어 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기원전 1,100년경의 페니키아인들과 그 후대의 그리스인들에 의해 지중해연안에 식민지가 개척되어 가면서 포도와 와인도 같이 퍼져 나갔다. 

지중해를 둘러싸고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시대에 와서 와인은 그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고, 많은 역사 기록이 남겨졌다. 또 한가지 특기할 사항은 와인이 치료약으로서도 널리 쓰였다는 점이다. 당시의 와인을 저장하는데 도기인 암포라가 사용되었는데 로마의 본국인 현재의 이탈리아로 당시의 스페인, 북아프리카 등에서 많은 양의 와인이 수입되었다. 지금도 로마시대의 침몰선에서 와인의 수송에 쓰인 암포라가 많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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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의 암포라


와인으로 제일 유명한 국가 중 하나인 현재의 프랑스에는 그리스인들에 의하여 포도가 전파되었는데 기원전 600년경 당시 식민도시인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마살리아(Massalia, 현재의 마르세유)에 포도원이 만들어졌고 점차 북쪽으로 확산 되었다. 로마시대에 와서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의 현대의 주요 와인 산지의 기초가 이미 확립이 되었다.  세계 최고의 와인산지 중 하나로 여겨지는 프랑스의 보르도 (Bordeaux)의 와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후 4세기의 시인인 아우소니우스 (Ausonius)에 의해서이다. 당시 아우소니우스는 보르도 주요 산지의 하나인 쌩떼밀리옹(St-Emilion)에 살았었는데, 아마도 와인의 역사는 그의 기록보다 훨씬 먼저일 듯 하다. 

로마가 멸망하고 나서는 와인의 전통은 교회에서 성찬의식에 쓰기 위하여 사제들에 의하여 이어지게 된다.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간 수도원들은 포도원과 와이너리를 소유하였고 사제들은 보다 나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하여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로 와인제조에 쓰이는 현재의 주요 포도 품종들의 대부분이 이때 확립이 되었다. 

와인은 중세기 프랑스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는데 각 수입국이 선호하는 와인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영국에서는 주로 보르도 와인을 마셨는데, 그 지역이 영국 왕실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부르고뉴(Bourgogne, 영어명 Burgundy) 와인이 주종이었고 이는 그 지역이 부르고뉴 공국의 영토였고, 또 브루고뉴 와인의 수송로가 북쪽으로 난 육로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와인과 같이 무겁고 부피가 많이 나가는 상품은 주로 강과 바다를 통해 수송되었는데, 보르도, 론(Rhone), 루와르(Loire) 등 대부분의 프랑스 주요 와인산지가 강을 끼고 있다. 부르고뉴는 예외적으로 하운이 발달하지 않아서 힘들게 육로로 수송해야 했고, 이 때문에 극히 일부의 수출 분 이외에는 대부분의 와인이 현지에서 소비되었다. 1224년에는 프랑스 국왕에 의하여 와인의 국제대회가 열렸는데 심사는 영국의 사제가 맡았다. 프랑스 각지, 스페인, 독일, 키프로스(Cyprus) 등에서 70가지 와인이 참여하였고, 이 최초의 “와인 올림픽”에서 키프로스가 영광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참고서적

  1. The World Atlas of Wine, Hugh Johnson and Jancis Robinson, 5th edition. Michell Beazley.
  2. The Oxford Companion to Wine, Jancis Robinson, 3rd edition, Oxford.

2009. 7. 7. 19:15 Trackback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