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믈리에 대회 최종 결선에 오른 세 명에게 주어진 과제는 샤토 마고트를 곁들여 고종과 명성황후의 마지막 식탁을 재현해 보라는 것. 고종이 동치미 냉면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냉면과 와인을 어울리게 차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역시 우주는 다시 한 번 엄청난 기지를 발휘하며 아무 음식도 차려 내놓지 않고 1등 자리에 오른다. (근데 어쩜 그렇게 말로 떼워주실까... 뭔가 기발한 음식 조합을 기대하고 있다가 쪼끔 실망했다.^^;;)
근데 솔직히 말해 냉면과 와인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조합이 떠오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와인은 일단 국물이 많은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국물을 마시지 않고 건더기만 건져 먹는다고(?)할 때에는 결선 진출자 중 남자가 제안한 것처럼 알자스 화이트 와인이나 프로방스의 로제 와인과도 그럭저럭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냉면은 본래 시원한 국물을 후룩후룩 마셔가며 먹는 음식이라 굳이 와인과 짝짓는 것이 약간 억지스럽지 않나?
흥미로운 이론을 하나 들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음식을 한 자리에 펼쳐놓고 먹는 공간 전개형 음식 문화, 서양은 코스대로 차례차례 먹는 시간 전개형 음식 문화. 우리나라는 국이니 찌개니 등을 옆에 두고 밥, 반찬과 함께 먹기 때문에 먹는 내내 국물 같은 '마실 것'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반면 서양은 스프를 제외하면 액체형 음식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식사를 하는 동안 음식을 잘 넘기기 위해 뭔가 '마실 것'이 필요했고, 마실 물의 품질이 좋지 못해 와인, 맥주 같은 곁들이는 음료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본래 와인이 식사와 함께 하기 위해 그 지방 음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술이라는 이야기와 잘 맞닿는 부분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반주의 개념이 있지만 와인에 비해 식사 도중 마시는 양이 절대적으로 적지 않은가? (소주의 그 작은 잔을 한 번 떠올려보라.) 크게 목이 마를 일이 없어서 그렇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2007년 막바지에 한국에 다녀간 영국의 와인 전문가 잰시스 로빈슨 홈페이지에 가보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체험한 우리 음식과 와인, 와인 문화에 대한 글이 있다. 그녀에게 한국이란 아직도 너무나 멀고 작은 변방국가인 것인지, 한국이 블라디보스톡 남쪽이요, 중국의 동쪽이자 일본의 서쪽에 있다는 친절한 설명(?)은 절로 쓴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체류 기간 동안 유명한 한식당에서 와인과 함께 이런저런 음식을 먹어보고 여러 매체 기자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는 그녀. 그런데 이렇게 우리 음식과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한식과 어떤 와인이 잘 어울릴까요?"라는 질문은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닐까? (궁금하신 분은 잰시스 로빈슨의 홈페이지 http://www.jancisrobinson.com/articles/20071130.html에서 전문을 읽어봐도 좋겠다.)
잰시스도 이것 하나는 제대로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와인 문화의 초기 단계에 있어서 와인에 대해 조금 안다는 사람이 자기 지식을 퍼뜨리며 각종 규칙과 공식을 절대적 진리라고 믿게 만든다는 것이다. 레드는 고기, 화이트는 생선, 와인 잔 다리 부분이 아니라 몸통 부분을 잡으면 무식한 사람 취급, 뭐 이런 것 말이다. 와인이 '된장녀의 전유물', '있는 척, 아는 척의 도구'가 아닌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맛있고 건강한 술이라는 생각이 빨리 퍼지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줏대있고 능력있는 와인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어 건전하고 독립적인 음주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아, 그리고 바라는 김에 하나 더. 와인에 붙는 세금도 같이 감면되면 어떨까? 호주머니 얕은 우리들도 조금 더 쉽게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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